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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반] 포천839년, 영평 965년?
이름
김은미
작성일
2011-10-14


인터넷기재글을 옮겨 봅니다. 학부모님들께 유익한 자료가 되시길 바랍니다.

<독자기고> 포천 839년, 영평 965년?
글 싣는 순서...1. 왜 건치연혁(建置沿革)인가?

 



 

 

최근 포천시 600년 기념사업 추진에 앞서 600년이 넘었다는 주장과 600년이 맞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포천시가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연도를 파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포천인터넷뉴스는 독자로부터 관련내용에 관한 글을 받아 연재하기로 했다. 포천시민 여러분과 학계의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글 싣는 순서

 

1. 왜 건치연혁인가

 

2. 포천의 건치연혁

 

3. 영평의 건치연혁

 

4. 기타

 

 

 

1. 왜 건치연혁(建置沿革)인가

 

저명한 학자의 이론을 빌지 않아도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습득하려 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미술로, 음악으로, 문학으로, 연극으로 각자의 타고난 소질로 문화의 갈증을 해소하려한다. 그 방편 중의 하나가 역사일 것이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방의 내력을 알고자 함은 당연하며 자랑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 까닭은 역사의 특징이 ‘나’를 중심으로 가족과 동네, 그리고 나라(국가)로 이어지는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고장의 역사를 천착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도덕교육이며 윤리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마다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각종 축제도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내 고장의 자랑을 널리 알리려는 주목적에 주민의 소득을 높여야겠다는 노력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인데, 최근에는 고장의 역사를 조명하는데 중앙정부의 지원과 함께 지자체에서도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임하고 있다.

 

 

먼저 건치연혁(建置沿革)이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할하는 독자들이 계실 것 같아 그 뜻을 설명하면 어느 고을이 언제 세워졌으며 그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내력을 말한다. 그것은 마치 서기 2003년 포천군이 포천시로 승격되고 그 이전에는 1983년에 종전 연천군 관인면이 포천군으로 편입되는 등 고을의 행정구역과 지위가 변동되어 온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후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어휘가 등장하여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음도 미리 양해를 바란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지만 건치연혁이란 고을이 지내 온 기록이라고 여기면 된다. 거듭 건치연혁은 개인으로 비유하자면 출생과 성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당연한 표현이지만 정확한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고을의 건치연혁을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떤 책이나 문헌을 살펴보면 될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청이나 군청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책이나 문헌으로는 조선 중종(中宗)의 명에 의해 편찬되어 서기 1530년에 완성된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인문지리서로는 완벽에 가까운 책자일 것이다. 인문지리서와 건치연혁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왕조시대에는 중앙집권적인 특성이 있어 이같은 왕명에 의한 지리서에서만 고장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보면 별다른 한문 지식 없이도 접근이 가능한 책자가 바로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하필 조선왕조에서 편찬한 지리서만이 그러한 기능을 하고 고려(高麗) 때나 3국 시대에 편찬된 책자는 없으며, 각 지방에서 편찬된 책자는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고려때 만들어진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지리지地理志)」가 있긴 하나 우리가 알고자 하는 건치연혁은 없다. 또한 조선 세종(世宗)때 편찬된 『고려사(高麗史)』에도 「지리지(地理志)」가 수록돼 있긴 하나 의미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우리 고장의 건치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외엔 없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조선 단종(端宗) 2년(서기 1454)에 완성된『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가 있다. 단종이 만들었다면서 왜 이름이『세종실록』 「지리지」냐고 질문한다면, 이 지리지는 세종이 승하한 후 그의 실록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지 6년이 되던 서기 1424년 당시 대제학(大提學)이던 변계량(卞季良)을 불러 “우리나라의 생김새와 함께 고을의 연혁(沿革)을 편찬하라”고 지시한데서 태동한 것이다.

세종은 “고을의 연혁을 편찬하라”고 했다는 점은 뒤에 다시 설명한다. 이같이 고을의 연혁이 강조된 지리서는 8년 만인 서기 1432년 완성된다. 그 이름이『신찬 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이다. 이쯤되면 독자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분명 앞에서『세종실록』 「지리지」를 말한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신찬 팔도지리지』를 이야기 하느냐고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고을의 연혁을 편찬하라고 세종이 특별히 명한 이『신찬 팔도지리지』가 유감스럽게도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다행히 정인지(鄭麟趾) 등이 단종 2년에『신찬 팔도지리지』를 수정 보완하여 만든 책이 바로『세종실록』「지리지」이다. 그러한 연유로 『세종실록』「지리지」는 전국 주부(州府) · 목(牧) · 군(郡) · 현(縣) 등 고을의 연혁이 고스란히 실리게 됐다. 『세종실록』「지리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데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을 실었는데 각 지방의 호구의 수(戶·數) · 전법(田法) · 군정의 수(軍丁數)를 수록하여 당시의 인구수, 논과 밭의 넓이, 군인의 수를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러한 특징은 『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각 지방의 연혁을 담은 지리서 발간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왕은 세종도 단종도 아닌 성종(成宗)이었다. 성종은 왕위에 오른지 9년이 되던 서기 1478년 1월 양성지(梁誠之)라는 신하(臣下)가 스스로 편찬한 『팔도지지(八道地志)』라는 지리서를 바치자 이에 자극을 받고 개인을 벗어난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지리서 편찬 작업을 명(命)하기에 이르렀다. 책임자는 노사신(盧思愼)으로 노사신은 국가가 소장(所藏)하고 있는 서책(書冊)은 물론 민간(民間)에 있는 문서를 모두 종합 참고하여 4년 만에 전체 50권의 지리서를 완성하였는데 이름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동국여지승람』은 이렇듯 국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만든 것인데 성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연산군도 수정보완을 시도(試圖)할 정도로 조선 전기 국왕들은 지리서 발간에 노력을 기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에 오른 중종(中宗)은 이행(李荇) 등에게 『동국여지승람』의 증보를 다시 명하여 서기 1530년 완성을 보게 되어『신증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이름의 지리지가 태어났다. 권(卷)의 수(數)는『동국여지승람』이나『신증 동국여지승람』이나 공히 50권이다. 여기서 현대적 개념의 권과 다르다는 점이 있는데 지금은 권(卷)이라는 단위가 책 한 권을 뜻 하지만 왕조시대의 권은 지금의 편(篇)의 개념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50권(卷)이라 하여 책 50권이 아니라 50편(篇)으로 이루어진 책자라는 의미라는 점을 부언한다.

 

 

이후 조선 중기와 후기에 이르러 이긍익(李肯翊)이『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지었는데 이 가운데 지리서가 들어있어 고을의 연혁을 알 수 있다. 또한 영조(英祖) 36년(서기 1760) 전국 290개의 읍지(邑誌)를 모은『여지도서(輿地圖書)』가 발간됐다. 이 책의 특징은 위에서 예를 든『세종실록』「지리지」·『신증 동국여지승람』등의 내용과 비슷하나 지방 관아(官衙)에서 작성한 것을 중앙 정부가 모아 발간했다는 점인데 각 지방의 행정에 자율권을 부여(賦與)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또 이 시기에 관(官)에서 주도하는 관찬(官撰)의 읍지류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私撰) 읍지류가 지리서의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예컨대 포천의 경우 사찬으로『견성지(堅城誌)』가 좋은 예이다. 관찬의 경우 영평의『영평군읍지(永平郡邑誌)』가 그러하다. 물론 관찬과 사찬읍지 모두 건치연혁을 다루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황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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